1. 소개[편집]

대한민국계 일본인. 재일교포 출신으로 한국명은 추성훈, 아키야마 요시히로 (秋山 成勲)는 일본명[4][5]이다.''' 헤이세이의 콘데코마[6]라고 불릴 정도로 유도 센스가 뛰어나며, 유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경기마다 유도 도복을 입고 출전할 정도다. 애정만큼 실력도 대단해서 수차례 국가대표에 뽑혔다. 종합격투기로 전향한 이후에도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많은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유도선수로서나, 격투가로서나 참 기구한 삶을 살아온 사람일지도 모른다.

2. 유도 시절[편집]

재일동포 4세 출신으로 아버지 추계이 씨 역시 유도 선수 출신이어서, 그는 어릴 적부터 유도를 시작하게 됐다.[7] 청소년 시절부터 일본 측에서 그 재능을 보고 국가대표로 뽑아준다며 귀화를 요청했지만, 추성훈은 자신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며 일본 측의 제안을 거부했다. 오오 성훈갓 오오

그는 이윽고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부산광역시청 소속으로 뛰게 된다. 이 곳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유독 국가대표 선발전과는 인연이 없었다. 추성훈이 뛰던 -81kg 급에는 용인대학교 출신이자, 1997년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조인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판도 이러한 용인대학교 출신에 대한 텃세에 일조했기 때문에,[8] 추성훈은 단 한번도 조인철을 넘어서지 못했다. 추성훈은 끊임없이 판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으며, 2000년 12월, 2001년 10월, 2번에 걸쳐 조인철을 꺾으며 자신이 그보다 뒤떨어지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조인철 역시 '가장 껄끄러운 선수다.'라며 추성훈이 뛰어난 선수임을 숨기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대표 2진으로 뽑아주기도 했지만, '체급별 1명'이라는 규정으로 인해 조인철을 선발했다. 이후 아시아선수권대회[9]에서 체급별 선수 제한이 3명인 대회에 비로소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해[10] 대한민국에 메달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차별에 그는 결국 대한민국 국적을 내던지고 일본으로 귀화한다. 이후 이와 비슷한 사례로 두명이 더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인재를 내친다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 일본 대표로 나타난다. 귀화한지 불과 한달여만에 그는 일본대표로 선발된 것이다. 그는 결승에서 대한민국 선수에게서 판정승을 거둔 뒤,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관중석에선 '쪽발이~' 하는 말까지 나왔고, 스포츠조선은 이날의 승리를 보도하면서 기사 제목에 '조국을 메쳤다'라는 표현을 쓰는 등 추성훈을 보는 시선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허나, 한국일보는 '도복엔 일장기 가슴엔 태극기'라는 표현을 썼다.

관련 인물/단체 추성훈(오빠), 추사랑(조카)

그러나 그는 특별히 나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애초에 방송 등에서 보여지는걸로 봐서는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가득하달까? 아무튼 대인배다...보통 이런 문제로 귀화한 사람이라면 열받아서 혐한으로 변할수가 있는데도... 그 뒤 2003년 세계 선수권 우승에 실패하는데, 여기서 부정 의혹이 제기된다. 2회전부터 4회전까지의 상대인 프랑스, 몽골, 터키에서 추성훈의 도복이 미끄러웠다며 항의했다. 국제유도연맹의 조사로는 도복이 문제가 없었다지만, 야마시타 야스히로 국제유도연맹 이사의 지시로 여분의 도복을 입고 경기, 4강전과 3, 4위전 모두 패하며 4위를 기록한다. 이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좌절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종합격투기로 전향할 뜻을 밝힌다.

아키야마를 피해자로 보는 시선과 스포츠맨쉽이 부족한 기회주의자로 보는 시선 '아키야마, 혹은 추성훈의 불편한 진실' 이 양립하고 있는데, 양쪽의 주장 모두 일리 있는 부분이 있으나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닌 이상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밝히기는 어려워 보인다.

2.1. 주요 수상 경력[편집]

1996년 전일본 유도학생선수권대회 2위

1999년 한국 국제유도대회 81kg급 3위

2000년 한국 국제유도대회 81kg급 우승

2001년 몽골 아시아선수권대회 81kg급 우승

2001년 이란 FAJR 국제유도대회 81kg급 우승

2001년 전일본 유도실업선수권대회 81kg급 우승

2001년 고토칸배 전일본 유도선수권대회 81kg급 우승

2002년 일본 국제유도대회 81kg급 우승

2002년 파리 국제유도대회 81kg급 우승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81kg급 금메달

2003년 전일본유도선수권대회 81kg급 우승

2003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 81kg급 5위

출처는 위키피디아 추성훈 항목(일본어,영어,한국어 버전 모두 참조)

3. 종합 격투기[편집]

3.1. 전적[편집]

주요 승 : 프랑소와 보타, 멜빈 만호프, 데니스 강, 앨런 벨처, 아미르 사돌라

주요 패배 : 제롬 르 밴너, 크리스 리벤, 마이클 비스핑, 비토 벨포트, 제이크 쉴즈

무효 : 사쿠라바 카즈시, 미사키 카즈오

3.1.1. K-1[편집]

2004년 12월 K-1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에서 데뷔한 그는 데뷔전에서 불리한 룰[11]에도 불구하고 프랑소와 보타를 가볍게 암바로 제압하였다. 

2005년 3월의 제롬 르 밴너와의 대결에서는 초반에 암바 그립을 잡는 등 선전하였으나, 결국 밴너의 타격에 밀리며 KO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의 상대에게서는 모두 승리를 거두며 뛰어난 활약을 한다. 유도선수 출신답지 않게, 그라운드는 물론, 타격으로도 많은 승리를 거뒀다. 

2005년 11월 그는 '한국선수 vs 외국선수' 컨셉으로 열린 K-1 HERO's 서울대회에서 한국선수 팀으로 출전, 상대인 오쿠다 마사카츠를 타격으로 꺾은 뒤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오랜만에 한국 와서 시합해 너무 기쁩니다. 진짜 행복합니다. 그리고 저는...지금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일본으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가슴 안에는, 지금 들어가는(들어 있는) 피는 완전 한국입니다. 더 열심히 해서 한국으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추성훈이자 아키야마 요시히로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고백했다. 같은 해 11월 KBS에서 추성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이 영상에서는 추성훈이 과거 용인대학교와 대한 유도회의 편파판정에 피해를 입었던 사실을 밝힘으로써, 두 단체에 대한 비난여론이 일기도 했다.

2006년 10월 9일에는 타격가 멜빈 만호프에게서 역전 암바승을 거둠으로써 히어로즈 초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2006년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에서 그는 일본의 사쿠라바 카즈시와 일전을 벌인다. 추성훈은 재빠르게 사쿠라바를 넘어뜨리고 계속해서 파운딩을 했고, 심판은 곧 경기 중단을 선언, 추성훈의 TKO승임을 알렸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크림을 몸에 발랐다는 사실이 알려져 NC 처리되고,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결국 대전료를 몰수당함과 동시에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처벌을 받았다.

조용히 훈련에 매진하던 그는 2007년 10월 28일 출장정지에서 풀려난 뒤 서울에서 데니스 강과 대전을 벌인다. 베테랑인 데니스 강이 승리할 것이라는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추성훈은 4분 45초만에 어퍼컷으로 KO승을 거뒀다.

그리고 2007년 12월 31일, 그는 야렌노카!에서 미사키 카즈오와 경기를 치른다. 1라운드에서 카운터 훅 한방을 턱에 맞고 주저앉고 추성훈은 이윽고 날아온 미사키의 킥에 코뼈가 부러졌다. 심판은 미사키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이 경기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킥을 맞는 순간 추성훈의 두 발과 손이 땅에 닿아 있었기 때문에 미사키는 추성훈에게 사커킥을 한 것인데, 이 대회 규정에선 사커킥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 뒤 이 경기는 무효화됐다. 그러나 진짜 논란은 경기가 끝난 뒤 악수를 청하는 추성훈에게 미사키가 마이크를 잡고 한 말에서 불거졌다. '너는 많은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을 배신하는 행동을 했다.'라며 미사키는 직설적인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사쿠라바와의 경기에서 크림을 발랐던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윽고 그는 링을 나가는 추성훈을 뒤에 대고 '일본인은 강하다.'라고 소리치기도 했다.[12] 이에 대해 여러 국내 격투 커뮤니티에서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다만 이에 대해선 당시 일본내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던 추성훈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저런 것이란 의견도 있다.[13][14] 실제로도 이 경기 이후론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어졌다. 이후 둘의 리벤지 매치가 거론되었지만 결국 이뤄지진않았고 2012년 미사키의 은퇴식에 추성훈이 나타나 축하를 해줌으로써 해묵은 감정을 털게 되었다.참고기사

2008년 7월 21일 그는 DREAM 5에 출전한다. 2008년 첫 출전이기도 한 이 경기에서, 그는 시바타 카츠요리와 일전을 치른다. 6분 34초만에 깃조르기로 승리를 거두고 난 뒤, 그는 자신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타무라 키요시를 겨냥해 '말만 하지 말고 한번 붙어보자'라는 말을 했다.

2008년 9월 3일 DREAM 6에 출전하여 토노오카 마사노리를 1라운드 6분 26초만에 암바로 제압하였다. 경기 후 그는 "요시다 히데히코 선배님과 붙고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좀 도와주십시요!"라는 마이크 어필을 하였다.

그러나 게가드 무사시와 아오키 신야의 도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를 가리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돌기도 했다. 또한 대전상대로 요구한 요시다 히데히코는 추성훈보다 한체급 높아서 패해도 커리어에 타격이 없고 이기면 자기만 좋은 경기라서 성사될리가 없다고 안티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게다가 추성훈도 한체급 낮은 아오키 신야의 공격적인 도전을 씹었기 때문에 안티들에게 더 까일 소지가 되었다. 추성훈 입장에선 얻을 게 하나도 없던 아오키의 대전을 거부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챔피언 자격으로 도전을 한 무사시와의 대전을 거부한 점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팬들에게도 까였다.

3.1.2. UFC[편집]

원래 소속단체였던 DREAM과 결별하고 2009년 2월 25일 UFC로 이적하였다. 

2009년 7월 11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열린 UFC 100 데뷔전에서 앨런 벨처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뒀다.[15] 하지만 이 판정은 대단히 논란이 되었는데, 1라운드에 다운을 허용했고 2라운드에 실컷 정타를 얻어맞았으며 3라운드에는 체력이 고갈되어 요단강에 한발짝 담글 정도로 밀렸다는 주장. 그러나 추성훈이 승리한 것은 UFC는 라운드별 채점방식이며 1라운드의 벨처의 반칙과 더불어 2라운드까지 테이크 다운 점수로 근소하기 리드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이라면 충분히 판정패를 당할 소지가 있는 경기였고 이 경기에서 부족한 체력이 약점으로 드러났다.

UFC 110 메인이벤트에서 반더레이 실바와의 경기가 확정되었었으나 취소되었다.그 이유는, 원래 비스핑과 붙을 예정이었으나 비스핑이 UFC 100에서 댄 핸더슨에게 대차게 떡실신 하는 바람에 저놈 별거 아니구나 싶어서 추성훈으로 상대를 바꿨다가 데니스 강을 떡으로 만들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흥행에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여 다시 비스핑으로 바꿨다고 한다. 말장난 수준...; 결국 실바가 비스핑을 꺾으며 UFC 116에서 실바와의 경기가 잡혔으나 실바가 훈련 중 부상을 입으면서 상대가 크리스 리벤으로 대체되었다. 

2010년 7월 UFC 116에서의 크리스 리벤과의 경기에서는 1라운드에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키며 우세를 점했고, 2라운드에서도 우세를 이어나갔지만, 타격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체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결국 3라운드에서 체력이 떨어진 추성훈은 종료 30초전 리벤의 트라이앵글 초크에 결려 역전패하고 말았다.[16] 벨처전에서 문제가 되었던 체력이 다시 불거진 것. 

특히 추성훈이 약 1년간 몸을 만들어 온 것에 비해 리벤은 TUF 피날레에서 시합을 마치고 보름만에 받아들인 매치였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17][18] 결국 반더레이 실바는 이 일로 추성훈과의 경기가 흥행소지가 안될 것 같았는지 사실상 경기할 마음을 접어버린 듯하다. 안습. 

2010년 10월 UFC 120에서 메인 이벤트에 출격. 마이클 비스핑과 경기를 가졌다. 열심히 전진스텝을 밟으며 타격전을 벌였지만 비스핑의 백스텝과 무한 짤짤이에 막혀 만장일치 판정패. 

이로서 현 UFC 전적은 1승 2패로 UFC의 운영방침상 일반적인 선수면 거의 퇴출대상[19]이다. 다만 동양권에서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선수라는 상품성과 UFC에서는 화끈한 타격 스타일로 승부하여 인기를 어느정도 얻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잔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3월 UFC 128에서 강적인 네이트 마쿼트와의 대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도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결장하게 되었다.[20] 

ㅎㄷㄷ 그당시 반응은 죽은거아님??

그리고 이후 복귀전 상대가 비토 벨포트로 확정되었다. 이겨버리면 충분히 업셋을 타고 엔더슨 실바와 타이틀전을 치룰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게 했지만 2011년 8월 UFC 133에서 1라운드 2분을 못넘기고 말 그대로 떡실신 TKO를 당했다. 이로서 향후 UFC 출전이 암울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UFC 144가 일본에서 열린다는 점 때문이었는지 3연패에도 불구하고 퇴출되지 않았고, 결국 UFC 144에서 5년간 무패였다가 GSP와 제이크 엘렌버거에게 UFC에서 2연패를 당하며 주춤하는 중인 제이크 쉴즈와의 대전이 잡히게 되었다. 웰터급으로 체급 전향을 한 것이다. 3연패를 달리는 추성훈과 2연패중인 제이크 쉴즈의 단두대 매치.

2012년 2월 26일 UFC 144애서 웰터급으로 출전 제이크 쉴즈와의 경기에서 패배하였다. 레슬링 배이스의 제이크 쉴즈의 테이크다운을 잘 방어하였지만 타격에서 우위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1라운드 40초를 남기고 추성훈이 먼저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켰다! 유도식 밭다리걸기로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켰으나 그것뿐이였다. 3라운드에 결국 만장일치 판정패로 추성훈이 패배하였다. 제이크 쉴즈에게 다시한번 밭다리걸기를 시도 하던도중 오히려 테이크다운을 당해 펜스를 두번잡게 되고 초크까지 내어줬다. 펜스를 잡았던게 큰 감점 요인으로 보인다. 체급하향 첫 경기치고는 잘했다는 평이지만, 4연패를 하게된 추성훈은 퇴출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추성훈은 인터뷰에서 앞으로 경기를 하는것은 고민해봐야 되겠다고 하였다.

2012년 7월 21일 UFC 149에서 티아고 알베스와의 경기가 잡혔었으나 부상으로 결장했다.

2014년 9월 20일 약 2년간의 공백을 깨고 사이타마에서 복귀전을 치루었다. 상대는 TUF 7 우승자 출신인 아미르 사돌라.[21] 타격에서도, 특기인 클린치 싸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판정승을 거뒀다. 나이와 그 간의 공백을 감안하면[22] 상당한 선전이었다는 평이다. 그 때 그 경기 일부 장면이 슈퍼맨이 돌아왔다 2014년 10월 12일 방영분에 나왔다. 당시 추성훈의 부모님과 장근석과 여동생이 경기장에 관람 온 모습과 아내 야노 시호와 시호의 지인들이 추성훈의 집에서 응원하는 모습이 비추어졌다. 딸 사랑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경기를 보지 않게끔 재우고 있었다.

UFC 서울 대회가 확정된 가운데 추성훈이 은퇴전을 치루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나이도 있고 하니 제일 적당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김동현·추성훈, 'UFC 한국' 출전 공식확정…크로캅 포함 4카드 발표

'눈이 안 보일 때까지' 링에 서고 싶다

한국대회 홍보 위해 예능 출연

3.2. 고급떡밥(?)[편집]

UFC에서의 성적부진에도 불구하고, UFC에 그에게 붙여주는 상대들을 보면 하나같이 후덜덜한데, 일단 첫승 후 정해졌던 상대가 반더레이 실바. 크리스 리벤전 패배 이후 복귀전 상대가 마이클 비스핑, 그 이후 상대로 거론된 선수들이 차엘 소넨과 네이트 마쿼트. 이들과의 매치업이 취소되어[23] 한숨 돌리나 싶더니 붙여준게 비토 벨포트. 파워가 딸려서 웰터급으로 내렸더니 추성훈을 반겨준건 제이크 쉴즈였다. 게다가 그 다음에 대전할 뻔 했던 상대는 웰터급이지만 평소체중이 95Kg가 넘는 티아고 알베스.(...) 뭐야 비스핑 빼고 죄다 약쟁이들이잖아?

팬들 사이에서는 농담삼아 다음 상대는 존 피치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정도.다행히 피치는 짤렸다 그러고보니 이쪽도... 도저히 연패중인 선수에게 해줄 만한 매치업이 아니다.두 명 빼고 다 나무위키에 항목이 있다는것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다 아마 적지 않은 나이인 추성훈을 최대한 써먹고 버리겠다는 생각인듯. 추성훈 본인도 선수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떡밥사냥보다는 강자와의 대결이 더 낫다는 말도 있다. 근데 이러다 본인이 떡밥될 기세

3.3. 경기 스타일[편집]

나카무라 카즈히로, 타키모토 마코토 같은 대개의 유도가 출신 MMA 파이터들이 유도 움직임에 의존해 지루한 경기를 펼치는 데 비해, 추성훈은 타격가 못지않은 감각적인 타격을 보여준다. 긴 리치에서 나오는 스트레이트를 주무기로 하는데, 마이클 비스핑이 시합 후에 놀라움을 표시했을 정도로 펀치력이 묵직하다. 킥도 스피닝백킥으로 KO승을 챙긴 적이 있을 만큼 활용도가 나쁘지 않은 편. 물론 이러한 타격 스킬뿐만 아니라 유도가 출신답게 테이크다운 디펜스가 뛰어나며, 유도식 테이크다운을 잘 활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것이 UFC 미들급에서 비교우위를 제공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 실제로 크리스 리벤에게 수많은 정타를 먹이고도 역전패했으며, 승리를 거두었던 앨런 벨처전에서도 상당히 고전했다. 특히 두 시합에서 공통적으로 체력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에 미들급에서 싸워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래플링 스킬도 UFC 기준으로는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어서, 테이크다운을 얻어내고도 상위에서 딱히 재미를 보지 못 할 때가 많다. 

결국 UFC 144 in Japan부터 웰터급으로 전향하게 되었다. 

4. 연예 활동[편집]

한일 양국의 연예계에서 활약 중이다.

2008년 이후 패밀리가 떴다, 무릎팍 도사 등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과 CF에 많이 출연하여 훈련은 언제 하냐?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의 선수들은 훈련기간과 휴식기간을 구분해 놓는다. 예능에서 부업을 하지 않는 톱 컨텐더는 찾아보기 힘들기도 하고. 랜디 커투어가 영화배우 한다고 까는 사람은 없잖아?

무릎팍도사에서는 일본인이자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여기서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을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8 연가'라는 앨범에 이 노래를 불러 삽입했으며, 이 앨범에 참여하면서 받은 개런티를 전액 목포의 한 복지원에 기부했다.

무릎팍 도사 출연 직후 Hite맥주 CF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연애하던 일본 모델, 야노 시호와 결혼하였으며, 쟈니벤에 출연했을때, 일본에 친한 남자연예인이 많고, 술을 잘 마시면서 남자모임이란 연회모임 같은 것에 소속되어 있다고 한다. 상당히 훈남모임으로 유명하다고.

2010년 1월 4일 놀러와에 김동현, 김재엽과 함께 출연했다. 이날 깜짝 출연한 추성훈의 옛 친구 이준훈씨의 말에 따르면 미팅하는 걸 좋아했던 모양이다. 마누라가 알면 큰일일텐데... 

2010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방영했었던 전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에 비밀요원 역할로 특별출연을 하기도 했었다[24]

2012년에는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시즌 2에 출연했었다. 별명은 야추(야수르 추). 각종 몸개그 및 깨알같은 개그를 담당중. 여담으로 김병만과 생년월일까지 같다.

2013년 2월 3일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2013년 6월 2일 생활의 발견에서 마지막 게스트로 등장했다.

2013년 6월 16일에 런닝맨에 또다시 출연! 우승까지 했다!!

2013년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자신의 의지(?)로 콜라 500ml를 원샷하고 트림을 하지 않고 노래까지 부를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리다가 결국 노래 시작하기도 전에 용트림 2연발을 날린 굴욕(...)을 겪었다.4분 20초부터. 허나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고, 사실 힐링캠프에서도 먼저 같은 개인기를 선보이다 망신당한 케이스가 있었다. 진짜 예능 대세로 올라설 속셈인가? 사실 이건 하이킹워킹이라는 일본 개그 콤비가 간판으로 써먹던 개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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