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강(江) 시테섬에 있는 성당이다. 공사는 1163년 주교 M.쉴리의 지휘 아래 내진(內陣) 건축이 시작되었고, 성왕 루이 치하인 13세기 중엽에 일단 완성되었으나 그 후에도 부대공사는 계속되어 18세기 초엽 측면 제실(祭室)의 증설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프랑스혁명 때 건물이 심하게 파손되어 19세기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다.

늑골교차궁륭(肋骨交差穹窿)으로 덮인 길이 약 130m의 장대한 신랑(身廊)을 중심으로 하는 오낭식(五廊式)의 웅대한 건축으로, 신랑 양측의 열주(列柱)·트리포리움(명층 아래 연이은 층)·명층(明層:높은 창)으로 된 명쾌한 3층 구성에서 그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단정한 서쪽 정면에는 최하층에 《최후의 심판》의 부조로 유명한 중앙 출입문 등 3개의 출입구가 있으며 여기에서 《제왕의 상》이 늘어선 가로가 긴 중간대를 거쳐 스테인드 글라스를 본뜬 지름 9.6m 장미의 창을 중심으로 하는 층, 열주로 구성된 그랜드 갤러리가 잇달리고, 그 위에 지상 6.9m 높이의 직사각형 쌍탑이 얹혀 있다.

힘차게 활 모양을 그린 다수의 비량(飛樑)으로 지탱된 남북의 측면에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명층이 줄을 잇고, 중앙 부근에 돌출한 익랑(翼廊) 끝 부분에는 지름이 13m나 되는 유명한 장미의 창과 아름다운 조각을 볼 수 있다. 익랑과 신랑의 교차부에 치솟은 첨탑(尖塔)은 19세기에 복원된 것이다.

또한 이 대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1804),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예배(1944.8.26)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1613~1621년에 건축된 성당으로, 도시 남쪽에 있는 기차역과 북쪽에 있는 구시가를 연결하는 루스벨트 대로(大路) 끝에 있다. 기본적으로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입구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첨탑이 높이 솟아 있으며, 건물 안에는 왕실의 거대한 석관, 보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서 전 국가원수인 장 대공(大公)과 벨기에 공주인 조세핀 샬로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으며, 매년 부활절 다섯째주 일요일에는 성대한 의식이 펼쳐진다. 맞은 편에는 헌법광장이 있다.

성당이나 교회 건물은 몽마르트(Montmartre)를 비롯한 파리의 도시 풍경과 더불어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가 가장 빈번히 그려낸 주제였다.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노트르담 성당>이 손꼽히는데, 주제에 관한 작가의 몰입뿐 아니라 조형적인 관심 또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의 시테 섬(Île de la Cité)에 자리한 노르트담 성당은 12세기에 착공되었으며, 고딕 양식 특유의 웅장함과 견고함을 자랑한다. 그리고 프랑스와 파리를 대표하는 이 역사적인 대성당은 위트릴로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어왔다.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선구자인 요한 바르톨드 용킨트(Johan Barthold Jongkind, 1819-1891), 야수주의(Fauvism) 화가들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와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quet 1875-1947) 등이 저마다의 조형적 관심을 토대로 노트르담을 화폭에 담아내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에서 화면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것은 대성당의 정면부 인 파사드(façade)이다. 오로지 캔버스 왼편에 아주 작게 묘사된 주택가 담벼락들만이 주변의 거리를 암시해 준다. 파사드 부분에서 조각적 디테일들은 결여되어 있지만, 둥글거나 타원의 형태들, 사각형들과 난간의 분할 면과 같은 기하학적인 형태들을 통해 관람자들의 주목을 이끌어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푸른색과 녹색 톤의 조화 속에서도 붉은빛의 성당 정문이 매우 분명하게 포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위트릴로는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보다도 형태나 색채와 같은 기본적인 조형 요소들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오를레앙의 대성당(Cathédrale d'Orléans)>(1909-1913)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볼 수 있다. 

한편, 스위스 제네바의 프티 팔레 미술관(Petit Palais Musée d’Art Moderne)이 소장하고 있는 위트릴로의 작품들 중에도 <노트르담 성당(Notre-Dame)>(1917)이 있다. 거의 동일한 장면이 유사한 구도로 나타나고 있지만, 1917년 작품에서는 화면 전경에 검은 옷을 입은 인물들이 등장한다거나 왼편의 건물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파사드의 조각들이나 장미의 창(Rose Window)과 같은 성당 건축의 장식적 디테일들이 한층 뚜렷해진 검은 윤곽선들을 통해서 더 적극적으로 묘사되었다.

위트릴로의 풍경화들은 화가가 직접 밖으로 나가서 실제의 풍경을 보면서 그린 것들이 아니다. 그는 당시 관광객들을 위해 널리 제작되었던 그림 엽서들을 참조하여 자신의 기억 속 장면들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먼저 자를 이용하여 엽서의 그림들을 정확하게 옮긴 다음 이것을 확대해서 제작하곤 했는데, 많은 직선들이 교차하는 성당의 정면 부분을 보면, <노트르담 성당> 역시도 그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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