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카타콤은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지하 납골당인 이곳은 끔찍한 비밀을 감추고 있다.

15일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는 이 카타콤의 비밀을 다뤘다. 그것은 카타콤에 지옥문이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당초 로마 시대에 발견돼 이후 채석장으로 사용된 카타콤은 1785년 파리 경찰 간부였던 알렉산더 르누아르가 공동묘지를 정비를 위해 도심을 떠돌던 유골을 모아 납골당으로 만들었다. 

총 길이 300km, 유골수만 600만 구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납골당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카타콤 인근에서 의문의 실종사건이 발생했다.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이 계속되자 1955년에는 카타콤 통행이 제한되기에 이르렀다. 

많은 이들이 사라졌지만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 사이에서 불길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로 카타콤에 지옥문이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 소문에 더욱 불을 지핀 것은 프랜시스 프리랜드 감독이다. 그는 파리의 카타콤에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카타콤 지옥문 루머를 본격 조명했다. 

프랜시스 감독은 카타콤 바닥에 떨어진 한 캠코더를 발견했는데, 여기엔 의문이 영상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영상에는 한 남자가 홀로 카타콤을 탐험하며 촬영했던 영상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남자는 카타콤의 곳곳을 누비며 유골을 확인하던 중 벽에 그려진 알 수 없는 문양을 포착한다. 그러다 남자는 무언가에 쫓기듯 달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그는 캠코더를 바닥에 버린 채 달아났다. 잠시 후 영상은 그대로 끝이 났다. 영상이 공개된 후 사람들 사이에서는 카타콤 지옥문 루머를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됐다.

나폴리 ·시라쿠사 ·몰타 ·아프리카 ·소(小)아시아 등의 여러 지방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로마 근교에 많다. 카타콤은 원래 그리스어 ‘카타콤베’로 ‘낮은 지대의 모퉁이’를 뜻하며, 로마 아피아 가도(街道)에 면(面)한 성(聖)세바스찬의 묘지가 두 언덕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3세기에 이 묘지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지하에 묘지를 두는 풍습은 동방에서 전래되었으나 그리스도 교도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지하묘지의 풍습이 더욱 성행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러나 게르만 침입 후 지하매장을 하지 않게 되어 카타콤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구조는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통랑(通廊)을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또한 통랑의 곳곳은 넓은 방처럼 되어 지도자급 교도의 묘실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통랑의 벽면(壁面)에도 시체를 두는 벽감(壁龕)을 일정한 규칙으로 설치하였다. 여기에 남겨진 수많은 벽화는 고대 이교미술(異敎美術)과 중세 그리스도교 미술의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예술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흥미롭다. 그 밖에 비명(碑銘)과 초대 그리스도 교도들이 예술의 상징으로서 그린 물고기 그림 등이 남아 있다. 로마제국의 박해시대에는 그리스도 교도들의 피난을 겸한 예배장소로도 이용되었다. 현재 그 유적은 로마시의 관광 코스에 포함된 것도 있으며, 순례자 등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쿼바디스 성당을 지나 조금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숨어 지내던 지하 묘지 카타콤베와 만난다. 카타콤베가 그리스도교인들의 피신처이자 교회이고 무덤이었으며 또 그로 인해 수세기 동안 순례의 대상이 된 성지로 숭앙받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그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이며 이교도들도 카타콤베 형태의 묘지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로마 주변에 있는 60여 곳의 카타콤베 가운데 대부분은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참배객을 가장 많이 부르고 있는 것으로는 아피아 가도에 있는 성 칼리스토 카타콤베와 성 세바스티아누스 카타콤베, 셋테 키에세 거리에 있는 도미틸라 카타콤베가 아닐까 한다. '카타콤베'라는 용어는 원래 성 세바스티아누스 카타콤베에만 적용되었다. 다른 카타콤베는 안식처를 뜻하는 치미테로(cimitero)라 하였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님처럼 땅 밑 바위 속 굴에 아마천 담요로 싸여 묻히고 싶은 나머지 그러한 방식의 매장을 선호했다. 더구나 초기의 그리스도 교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거나, 노예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좋은 묘지를 마련할 수 없었다.1) 당시 로마에서는 성 안에 묘지를 둘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하여 묘지를 만들었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자 이제는 땅속으로 파고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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